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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s Review

독서리뷰 : 『단숨에 읽는 바울』(존 M. G. 바클레이, 새물결 플러스)

by Pastor Park 2020. 5. 1.

출판사에서 가져온 이미지^^

1. 들어가는 말

 

책 제목이 단숨에 읽는 바울인데, 단숨에 읽진 못했고, 띄엄 띄엄 책을 읽었다. 이 얇은 책을 읽다 말다 하다니, 그냥 한숨에 읽어버려도 되는 책인데, 마지막 8-10장을 남겨두고 잠시 책을 구석에 쳐박아뒀었다. 뒷부분을 마저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9장, 10장이 나름 재미있었다).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사실 바클레이의 "바울과 선물"(2015)을 읽으려다가(목표로한 신약학 교수님이 대학원에서 "Paul and the Gift"를 진행하길래, 어차피 읽어야 하나보다 싶어서), 동일 저자가 쓴 얇은 책을 소장하고 있던게 생각이 나서, 바울과 선물을 서언과 결론(18장)만 읽고 나서 다시 덮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아이들이랑 같이 있다가, 책 읽기를 다시 중단했다. 단숨에 읽지 못해서 기억이 끊어져 있지만, 워낙 간단한 책이니 간단히 리뷰해야지.

아 생각해보니, 존 바클레이의 책을 읽기 전에,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1977)를 읽다가, 아 개념과 이슈를 아는데, 디테일하게 읽어야 하나? 아니, 논지 전개를 살피기 위해 읽어야겠지? 이런 고민을 하는 중에, 읽기가 귀찮아져서, 바울과 선물로 넘어갔는데, 책 읽기가 잘 안되어서 가벼운 책으로 넘어갔다.

 

 

(오래간만에 글을 쓰려니, 엄청 잘 안써진다.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어째뜬 글쓰기 활동을 천천히 회복해야 할꺼 같다.)

 

2. 저자 소개

 

저자인 바클레이는 제임스 던을 이어서 더럼 대학교의 라이트푸트 신약학 석좌교수로 있단다. 아래 링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더럼대학이야 신약학에서 유명한 대학이니, 알만한 사람은 잘 알 것이고, 모를만한 사람들은 모르겠지. (총신 지도교수님께서 여기 학교 출신이시다.)

더럼대학교 종교학부 링크 페이지!

https://www.dur.ac.uk/theology.religion/staff/current.staff/

 

다들 하는 저자 소개, 학교에 나와 있는 그의 소개를 살펴보자. 우선 얼굴은 이렇게 생기셨다.

존 M. G. 바클레이

Telephone: +44 (0) 191 33 43951

Room number: Abbey House 104

Contact Professor John Barclay (email at john.barclay@durham.ac.uk)

홈페이지 접속해보니 이렇게 연락할 수도 있다. ^^ 우선 인상은 좋으신 편이고, 백인이시고, 듣기로는 아주 신중하신 분이라고 들었다.

홈페이지에 있는 소개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부는 고전과 신학이다. 역시 연구자가 되려면 고전 전공으로 고전어가 잘 되어야 하는데, 나는 어쩌면 좋나. 어쩌겠나, 한국인의 한계를 인정한다. 갈라디아서로 캠브릿지에서 박사학위를 얻고 글래스고에서 교수직을 하다가, 더럼으로 2003년에 와서 지금까지 쭉 계신다. 얼굴 확인했으면 저자 소개는 끝난거다. 재미난 점은 뉴질랜드에서 안식년을 보낸 경험이 있으시다고 하면서, 자신이 뉴질랜드 럭비 팀인 All Blacks의 팬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흠, 안식년에 무엇을 하셨길래...ㅋㅋ)


바클레이의 저작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리고 신약학도들이 이제는 피할 수 없이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은 "바울과 선물" (Paul and the Gift)이다. 2015년에 나온 책을 새물결 플러스에서 2019년에 4년만에 번역을 했으니, 새물결 플러스의 역할이 정말 크다고 생각한다.(번역 인사 : https://youtu.be/ln4xcKQbKvI) 올해 11월 10일에 바울과 선물의 축약본? "Paul and Power of Grace"이란 책이 나올껀데, 아무래도 현대의 독자들에게 좀 더 편하게 접근하기 위해서 인거 같다. 여기서 바울과 선물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그 은혜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주는 현대적인 의미도 다룬다고 하니, 나름 기대하봐도 좋을 것 같다. 참고로 바울과 선물은 지금 킨들 할인 중이다. 한국어 책도 정가 55,000원이고, 원서도 페이퍼로 73.99불(캐나다 달러)인데, 킨들로 7.13불(캐나다 달러)로 살 수 있으니, 원서로 보고 싶으면 킨들 강추한다. (링크 걸어둠)

https://www.amazon.ca/Paul-Gift-John-M-Barclay-ebook/dp/B018XZAGJS/ref=sr_1_1?crid=2OVQ9UGUV9M6U&keywords=paul+and+the+gift&qid=1588298923&sprefix=paul+and+the+%2Caps%2C171&sr=8-1

 

 

3. 가벼운 배경지식

 

바클레이의 "바울과 선물"은 인류학적 관점에서 선물을 살펴보고, 그 방법론을 가지고 은혜에 대한 신약학의 이슈를 풀어가는 책이다. 샌더스의 바파유 이후로, 유대교가 어떤 종교인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지 40년이 넘게 지났다. 언약적 율법주의 이후에, 제임스 던과 톰 라이트로 대표되는 새관점과의 많은 논의들이 바울 학계를 지배했다고 볼 수 있다. 샌더스가 말하듯이 유대교도 은혜의 종교였다면, 바울이 비판한 '율법의 행위'는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 논의가 되어 왔다. 간단하게, 이스라엘 민족성을 드러내는 표지(안식일, 할례, 정결법)을 비판한 것이라고 말한다. 즉, 원래 은혜의 종교였던 유대교에 대해서,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을 바울이 비판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지들만 잘났다고 하는 민족주의 개념을 바울이 비판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논의로 인하여, 기존에 종교개혁자들의 주장, 그리고 그에 기반한 개신교, 개혁주의 (내가 속한 학교)는 아주 난감해졌다. 왜냐하면, 바울이 비판하는 율법의 행위가 자기 행위로 의를 얻고자 하는 말이여야만 그 신학이 성립되니까!;; 새관점의 파동은 기존의 종교개혁자들의 바울 해석에 의문점을 던졌다. 뭐 루터가 바울을 제대로 해석한게 아니라, 루터는 루터의 종교개혁이란 상황 속에서 바울을 읽어낸 것이라고, 그렇게 결론 내려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존 개신교 해석도 나름 일리가 있다는 반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뭐, 총신 일대원 입학 할 때, 면접 준비하는 과정에서 과거 시험 문제 보면, 새관점을 어떻게 비판할지에 대한 모범답안에서, 유대교가 은혜의 종교가 아니라 원래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던 행위의 종교라는 문서들도 있다는 것이 반론의 근거로 짧게 제시가 되기도 했었으니까!

 

(혹시나 또 누군가 시비걸까봐 그러는데, 난 종교개혁자들을 전혀 무시하지 않는다. 난 개혁자 전통에 여전히 서있고, 바빙크를 읽었으며, 칼빈의 기독교 강요,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오웬의 글을 비롯하여, 백스터의 목회에 대한 것, 스펄전, 로이드 존스를 읽어갔던... 보수 중의 보수 출신이며, 청교도 빠였던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두지 않으면, 꼭 이상하게 시비 거는 사람이 있어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긴 하지만 어쩌겠나! 이 바닥 잘 알자나!)

 

최근 캐나다에 있는 신약학 교수들을 살펴보다가, 토론토 대학에 있는 위클리프 칼리지에 새로 부임하게 된 Stephen Chester 교수 (스코틀랜드 장로교 출신인데, 위클리프에서 가르친다. 그만큼 위클리프가 보수적인 것 같다.)님의 Reading Paul with the Reformers: Reconciling Old and New Perspectives (Grand Rapids: Eerdmans, 2017)이란 책도 알게 되었다. 

요런 책이다!

이 책은 구 관점과 새 관점의 논쟁이 있는 상황을 인지한 상태에서 종교개혁자들의 바울 해석을 살펴보는 책이다. 크리스찬 투데이에서 수상을 한 책이니, 나중에 꼭 읽어봐야겠다. 이 책에 대해서 바클레이는 이렇게 평을 해놨다. “In this remarkable book, the fruit of many years of reading and reflection, Stephen Chester has made a decisive intervention into Pauline scholarship that significantly alters the terrain. . . . Hours of futile disputes and reams of pages caricaturing the Reformers could have been avoided if Pauline scholars had known this material. From now on, if such caricatures persist, there will be a simple reply: ‘read Chester before you speak or write on this again.’ . . . Chester’s work will surely fertilize Pauline scholarship for many decades to come.” (John M. G. Barclay)

 

“수년간의 독서와 성찰의 결과인이 놀라운 책에서 Stephen Chester는 지형을 크게 바꾸는 Pauline 학자들에 결정적인 개입을했습니다. . . . 바울 학자들이 이 자료를 알고 있었다면, 개혁 주의자들을 풍자시키는 페이지의 헛된 논쟁과 다량의 페이지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제부터 그러한 풍자 만화가 지속되면``이것에 대해 다시 말하거나 글을 쓰기 전에 체스터를 읽으십시오 ''라는 간단한 대답이있을 것입니다. . . 체스터의 연구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폴린 장학금을 비옥하게 할 것입니다.” (구글 번역기)

 

어쨰뜬 본론으로 돌아와서, 바클레이의 바울과 선물은 이런 구관점과 새관점의 논쟁 속에서 그 모두의 전제를 사실 한번 때리는 책이다. 은혜라고 하는 개념의 극대화를 통해서, 제2성전기에 은혜가 다양한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인류학적 통찰을 통해서 보여주고, 이를 통해서 각자가 강조점이 달랐어! 이렇게 쫙 풀어준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서, 좋은 강의들이 많다. 안용성 박사님의 새물결 플러스 대중강좌가 처음에 책 내용을 쉽고 빠르게 이해하기 좋았다. 김선용 박사님의 청어람의 강의는 맘 먹고 같이 들으면서 책을 읽기에 좋을 듯하다.

https://youtu.be/0PlKoyQbiSw (새물결 플러스 대중강좌, 안용성 박사)

https://youtu.be/Nlcfs3E32l0 (청어람 김선용 박사)

 

4. 『단숨에 읽는 바울』 내용 소개

 

드디어 본론이다. ^^ 간만에 글을 쓰니 완전 엉망 진창이다. 저렇게 길게 앞부분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 

어째든, 앞부분을 저렇게 쓴 이유는 바클레이가 정말 대단한 학자라는 것을 생각해보기 위해서 나름 정리해본것이고, 원래대로 아주 얇은 소책자를 소개해보자. 

 

"단숨에 읽는 바울"은 2017년에 나왔는데, 2018년에 번역이 되었다. 새물결플러스에서 "바울과 선물"을 마케팅하기 위해서 어쩌면 전략적으로 출판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A Very Brief History 시리즈

 

이 시리즈는 익숙하진 않았는데, 잘 나온것 같다. 이 책은 2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마다, 한국어로 15페이지 정도의 짧은 장으로 5개의 장이 있다. 1부는 역사, 2부는 유산을 다루는데, 진짜 짧은 책 속에서 다뤄야할 내용들을 함축적으로 다루는 지점에서, 성도님들과 짧게 바울에 대한 신학의 흐름을 소개하기에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교회에서 바울과 선물을 읽진 않을꺼니까...) 신학과 목회의 중간 지점을 목사하는 이유라고, 즉 개인적인 소명으로 신학의 민주화를 통한 교회 개혁을 꿈꾸는 나에게는 이런 책들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한다. 짧은 책 읽기 속에서 다룰 지점들을 언급할 수 있으니 좋은 책이다.

 

1부 역사

1장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 안에서의 바울

2장 바울의 편지들과 그 역사적 정황들

3장 바울과 유대 전통

4장 로마 세계에 위치한 바울의 교회들

5장 바울의 초기 이미지들

 

2부 유산

6장 경전으로서의 바울

7장 아우구스티누스와 서구 교회

8장 개신교 전통 안에서의 바울

9장 유대교-그리스도교 관계 안에서의 바울

10장 사회-문화적 비평가로서의 바울

 

1부 역사는 말 그대로 초기 역사를 말해준다. 바클레이는 바울이란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언급하면서, 그리스도교 운동이 활발히 벌어질 때, 바울이 무엇을 행했던 사람인지를 누구나 인정하는 바울서신 7개를 기초로 사도 바울의 말을 사용해서 바울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준다. 초기 그리스도교가 바울 없이는 설명 불가능하다는 것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2장에서 바울의 '편지'를 소개하는데, 이 편지들이 그리스도교 신학의 기초가 되었으나, 바울은 신학서적이 아닌 편지를 썼다는 것, 그래서, 왜 이 편지를 썼는지에 대한 상황들이 역사학자로 자처하는 바클레이에게 흥미로운 지점이라고 말한다. "역사학자가 신학자에게 반드시 상기시켜야 할 사항은 바로 바울이 상황 대응적 사상가라는 사실이다"라고 언급하는데, 바울이 조직신학자가 아닌 실천신학자에 가깝다는 그의 말은 바울의 편지를 읽어낼 때, 흔히 빠지는 오류가 어떤 것인지 충분히 인지하게 해준다. 뭐, 흔히들 로마서는 조직신학 책으로 우리가 읽지 않나? 나도 마로존의 팬이며, 그렇게 설교를 했었으니... 어째뜬, 그러면서 이 편지의 기능이 어떤 기능을 했는지, 그리고 초기 교회가 바울의 편지를 어떻게 활용? 이용했는지, 그러면서 등장하는 위명서신에 대해서 언급해준다. 예를 들어,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의 작품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그 모작인 데살로니가후서는 바울의 권위를 빌린 다른이의 작품으로 또 다른 저자가 썼다고 한다. 그래서 확고한 7개의 편지가 아닌 6개의 편지들을 제2바울 서신이라고 학계에서는 불린다. 즉, 바울 해석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지점이다. 7개의 편지를 기초로 나머지 6개의 편지에서 어떤 사상의 발전이 있는지 살펴보려는 것이다. 어째뜬, 이 책이 이런걸 다루는건 아니고, 7개의 편지가 어떤 상황에서 쓴 것인지 설명해주고 있다. 3장과 4장은 각각, 유대, 로마 전통에서 바울을 살펴본다. 뭐 신약학에서 유대쪽 흐름이나 로마쪽 흐름을 살피는 이유는 우선, 예수, 바울이 유대인이었으니까 유대교를 살펴야 하는 것이고, 편지의 독자들의 삶의 정황이 로마제국 속에 있으니, 로마도 살피는 것이겠다. 그래서 3장에선 유대인으로의 바울의 모습을 바울의 서신 속에서 이야기해주고, 4장에서는 그 독자들의 로마 제국 상황에서 유대인의 위치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부분은 3장과 9장 유대인으로의 바울을 읽어나가는 지점이다. 5장은 초기 교회가 바울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보여주는데, 행전에서의 바울의 모습이 영웅처럼 등장하는 것!, 위에서 이야기 했듯, 나머지 6개의 편지들에서 바울의 가르침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독신주의(고전)를 선호하는 위험스러운 모습이 가정 규범(에베소)을 언급하면서 안정을 찾아가는 느낌? 뭐, 바울과 테클라 행전에서는 금욕주의를 설파하는 자로 고전7장을 반영하나, 에베소서나 디모데전서와는 반대의 모습으로 그려준다고 말해준다. 어째뜬, 이런 급진적인 바울의 이미지가 "바울의 순교"에서 완성되었다고 말하면서, 바울의 초기 이미지가 다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것은 바울이란 존재가 하나의 그림으로 하나의 방식으로 해석되기에는 아주 모호한 인물이였고, 그리스도교가 오랜시간 동안 흘러가면서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미 초기에서부터 나타났다는 것을 반증해준다.  

 

2부는 자연스럽게, 한 바울이지만 바울을 읽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6장은 경전 안에서, 즉 초기에 바울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7장은 콘스탄틴 공인 이후, 아우구스티누스가 바울을 읽은 방법을 소개하며, 그 안에서 서구 교회의 기본 세팅이 자리 잡혔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연스럽게 8장은 종교개혁 당시에 바울 읽기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방식의 바울 읽기가 여전히 우리 기독교 전통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전통이라는 것을 바클레이는 말해주며, 이 유산을 소개해준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지점은 9장과 10장인데, 어쩌면, 성서학이란 것이 계몽주의 이후에 태동되었기 때문일까? 9장은 종교개혁의 유산을 뛰어 넘으려고 했던 성서학의 시도를 엿볼 수 있다. 구종교사학파의 거장인 F.C.Baur를 소개해주고, E.P 샌더스, 그리고 새관점의 흐름을 이야기해준다. 왜? 유대교-그리스도교의 관계에서 바울을 읽어나가려고 하는 것은 지속적인 신약학도의 공부 영역이겠다. 사회변혁에 관심이 많은 나는 역시 10장이 맘에 든다. 급진적인 읽기는 우리의 삶에서 벌어지는 현실 이슈와 늘 연결점이 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급진적인 도전부터 시작하여, 니체의 이야기, 히틀러 시대에 고백교회와 바르트에 대한 언급, 더 나아가 타우베스, 아감벤, 지젝, 바디우 등등이 바울을 재발견 했다는 것, postcolonialism오늘날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소개해준다. 과거 노예제도를 옹호하는데 바울이 사용되었고, 노예제도를 폐지하는데도 바울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소개하면서, 오늘날의 여성문제도 동일하게 바울을 통해서 바울에 의해서 어느 진영이든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는데 사용한다. 동성애 문제도 있고, 인종차별의 문제, 국가와 교회의 문제들에 대한 이슈들은 바울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즉, 우리의 희망사항을 본문에 담아서 읽기 쉽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해준다. 바클레이가 그러면서 언급하는 부분을 인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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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예들은 해석학의 기본 원칙을 잘 보여준다. 본문들은 (평소 우리가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라고 말하듯이) 단순히 무언가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본문들은 (성경 본문들에게도) 인간 해석자들에 의해 목소리와 영향력이 주어지며 이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위상과 자신들의 문화적 또는 정치적 의제에 따라 불가피하게 본문들을 선별하고 우선순위를 매기며 담론화한다. ... 해석자에게 엄청난 책임을 지운다. ... 바울의 유산에 대한 논의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그의 편지들을 신중하게 읽을뿐더러 그 의미가 우리의 현재 정황에도 올바르게 전달되로고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 바울이라는 인물이 좋든 싫든 간에, 정치적으로 우리의 "보수주의적" 혹은 "자유주의적" 성향에 꼭 들어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149-150쪽)

그러면서도 책을 결론 지을 때, 우리로 하여금 바울을 읽어날갈 희망을 선사한다. 원래 1장에서 봤듯이 바울은 논란이 많은 인물이고, 그 편지를 해석하는 차원에서 여전히 오늘날에도 논란이 있다. 현대 서구 사회가 그리스도교의 유산에서 멀어지고 있어서, 바울도 친숙하지 않은 인물이 될지 모르지만, 어차피 서구 문화 안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유산이 있을 것이고, 바울의 영향력은 어디에서든 드러날 것이기에, 그 바울의 메시지를 새로운 세대와 다른 문화적 문맥에 맞도록 중재하고 설명하는 노력을 그리스도교 신학은 지속할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런 일이 우리의 일이지 않겠는가!

 

5. 평가 및 나가는 말

 

아! 책 내용 소개는 괜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뭐, 짧은 책이다. 앉은 자리에서 바로 읽어버릴 수 있는 아주 가벼운 책을 책 자체보다 길게 소개하는 거 같아서 왜 이 글을 쓰나 싶다. 사실, 이 글은 앞으로 내가 글쓰기를 시작하기 위해서 잡담을 하는 성격이 강한 것이니, 이해를 부탁한다. 

사실, 그냥 읽으면 아 바울이란 사람을 잘 소개해준다고 생각이 들지만, 챕터별로 하나의 꼭지점을 잡아서 신약학을 소개해주는 용도로 책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독서용도보다도, 조직신학만 있고 성서학이 부재한 한국교회에서 이런 책을 제자훈련 교재로 활용해보는 건 어떨까? 신약학이란 이런 내용들을 다룹니다! 목사들이 공부하는게 그렇게 허접하진 않습니다. 꽤나 고등작업입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을 때가 종종 있으니까! 그닥일까? 신앙에 도움이 되는 지점들보다, 요즘 청년들은 궁금한게 많고 해소해줘야 하는 지점들이 많은거 같은데^^ 이건 개인적인 생각이다. 해석의 다양성을 알려주면, 청년들이 혼란해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속에서 난 단단해진다고 생각하기에... 

 

한줄평 : 교회에서 바울을 연구하는 신약학의 대중화를 위해서 같이 읽으면 재밌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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